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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농악/-농악자료-

풍물이란?

  

  풍물놀이의 분류

 

 

 

일반적으로 발생지역과 목적에 따라 풍물놀이는 풍물굿과 두레굿으로 나눌 수 있다. 풍물굿은 서낭굿과 지신밟기처럼 공동체의 풍농(祮農)과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안(內)놀이로서 논농사가 적은 산간지방에 많다. 비교적 단위 면적이 좁은 계단식 논농사이거나 경사면의 밭농사가 많으므로 일시적인 집단노동(集團勞動)의 필요성이 경미하다. 보통 서낭굿은 형식상 판굿(싸움굿)과 화해굿으로 나눈다. 반면에 두레굿은 공동작업(두레,품앗이)의 능률을 향상시키 위한 들(野)놀이로서 논농사가 많은 평야지방에 많다. 지금과 같은 관개수로(灌漑水路)가 미비한 논농사지대는 이모작(二毛作)을 하기 위하여 농사절기와 강수량에 신속하게 대비하는 공동작업은 거의 필연적이다. 보리의 작황이 늦어지거나 모내기의 우기(雨期)가 빨라지면 보리타작과 모내기를 거의 동시에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진척시켜야 하기 때문에 공동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풍물굿의 가락은 단순하고 투박하며,두레굿은 작업의 진행과 연결하여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가락이 많으며 길군악이 두드러진다.

 

사회문화의 변화와 시대적 필연성(必然性)에 의하여 민속놀이도 꾸준히 변화하면서 전승되었다. 그러다가 필연성이 없어지면 사멸하는 경우도 있고, 대체놀이의 등장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상호보완적인 기능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여기서 인류학자(人類學者) Firth의 네 단계 가설(假說)은 다양한 변종(變種:variety)을 설명하는데 적절할 것이다. 대규모(大規模)의 문화가 소규모(小規模)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때 나타나는 네 단계 과정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첫째 물질적 가공품(加工品)은 빠르게 수용(受用)하지만 정신적 전통가치(傳統價値)는 변화하지 않는다. 둘째 상호작용이 커짐에 따라 전통가치는 쇠퇴하고 신구(新舊)의 가치관사이에 긴장(緊張)이 나타난다. 셋째 새로운 가치질서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이 나타나 전통적 관습(傳統的 慣習)에 복귀하려는 경향(傾向)이 나타난다. 때로는 시계를 반대로 돌리려는 무모한 시도(試圖)가 행해진다. 넷째 성공적으로 신구의 가치관이 혼합되어 어느정도 균형(均衡)을 이루면 독특하고 진기한 문화양식(文化樣式)이 성립된다.

 

풍물놀이의 변화에 위와 같이 특정집단을 모형(模型)으로 연구한 문화사적 가설(假說)을 그대로 적용하기란 어렵지만 변화의 본질을 유추(類推)하고 이해하는데 범례(範例)가 된다. 다음은 일반적으로 총칭하여 풍물놀이라고 하는 민속놀이를 기능적인 면에서,또는 구성적인 면에서 다르게 명명되어진 몇가지 사례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전승이나 전수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패거리는 정통(正統)이고 남의 패거리는 왜곡(歪曲)이라고 오도(誤導)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사회문화의 전파론에 의하면 상호 충돌하고 보완되면서 발전하는 민속놀이의 다양성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1)풍물굿-판굿.지신밟기

 

 

일반적으로 풍물굿이라고 하면 마을 공동체의 행사로서 마을의 안녕과 공동의 목적(자금,기원)을 위하여 하였던 마을굿을 총칭(總稱)하여 이른다. 영남의 서낭굿, 호남의 판굿, 지신밟기등이 이 범주에 든다. 꽹과리,징,북,장구,소고,나발 등의 악기를 사용하는 가장행렬(假裝行列)기능과 포수,양반,각시,무동 등의 잡색(雜色)놀이를 하는 연희기능(演戱機能)을 포함하여 시공적(時空的)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종합예술(綜合藝術)이다. 고요한 천지를 열어젖히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풍물의 소리는 신명을 돋구어 관객과 더불어 정서적,육체적 정화를 자아낸다.

 

풍물굿은 농촌의 농기구와 가재도구를 소품으로 하여 어울음을 만들고, 어깨춤을 추어도 본래의 농촌정서와 잘 조화되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굿판이다. 절제된 한과 삶의 애환을 승화(昇華)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이루려는 서민대중의 의지를 표출(表出)하는 공동체적 향연이다.

 

지신밟기는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마을의 자금(資金)을 염출(捻出)할 때에도 행해졌다. 마을 공동체의 기원이나 소망을 이루고 악을 물리치며 밟아버림으로써 한 해의 무사태평(無事泰平)을 놀이로서 행하였다.지신밟기에 연유하여 영남지방에서는 풍물놀이를 "매구"라고 하는데, 이것은 매귀(埋鬼)에서 "l"모음충돌회피로 매구로 변형되었다. 지신밟기를 장소에 따라 분류하면 당산굿, 샘굿(용왕굿:공동우물), 문굿, 성주굿(대청마루), 조왕굿(부듣), 청룡굿(장독.뒤안), 샘굿(집안우물), 고방굿(곡간), 외양간굿, 측간굿(뒷간),술굿등이 있고 각각의 장소에 맞는 노래와 고사반(입소리)이 있다. 이 중에 으뜸은 자금의 염출과 직결된 성주굿으로 가장 길며 짜임새가 좋다. 다음장에 서술되는 풍물놀이 분포에서 각 지방의 농악은 이 풍물굿을 말한다.

 

 

2)두레굿(품앗이굿)

 

 

두레는 부락의 공동체 작업을 바탕으로 발생한 품앗이와 같은 의미로서, 두레풍물은 노동의 시작,작업,이동,뒷풀이로 작업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노동의 고통을 위안(慰安)하는 기능이 있다. 각 부락의 농민들은 하루의 노동을 시작하면서 농악대를 편성하여 농기를 선두로 악기를 치면서 농부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힘든 농고(農苦)로부터 위안이 되고 공동의 연대감(連帶感)을 확인하고 작업장에서 공동작업의 능률을 배가(倍加)하며 상호의 농작을 번갈아 도왔다. 노동을 끝내고 여흥을 돋구어 힘든 노동의 피로를 풀었다. 뿐만아니라 농번기(農繁期)인 6,7월에 각 가정에서 능력별로 갹출하여 초연(草宴)또는 세조연이라는 위로잔치를 열어 마을 농부들은 술과 밥을 먹으면서 하루종일 농고를 잊고 즐겁게 놀이를 하였다. 이와같이 공동작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마을로 돌아와 넓은 마당에서 신명나는 판굿을 치게 되는데, 여기에 좀더 다양한 구성과 조직적 짜임새가 가미(加味)되어 기능적인 노동의 능률을 접어두고, 치배들은 유희적 요소(遊戱的 要素)가 많은 판굿으로 구경꾼과 어우러져 다양한 개인기와 집단기예(集團技藝)를 보여줌으로써 민속놀이로 정착하게 되었다. 두레풍물은 사실상 사라지고 판굿에서 그 것을 모방하는 구정놀이만 있을 뿐이다.

 

 

3) 사물놀이

 

 

인간은 자연환경(自然環境)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사회환경(社會環境)의 지배를 받는다.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인간 스스로가 만든 또 다른 사회환경의 지배를 받고있다. 때문에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도덕과 규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이러한 사회환경을 Hegel은 <제 2의 자연>이라 하였다. 자연의 현상은 보편적 질서에 의하여 생성 소멸하는데 반하여,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화는 비합리적이고 현실적 지반(地盤)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다.그러나 현실적 지반의 변화에 사회문화가 변화하지 못하고 모순(矛盾)될 때 서로 상극(相剋)이 되며,그러한 충돌단계(衝突段階)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한다. 때로는 모순된 현상이 타협점을 찾지 않고 각각 존속하는 경우가 있다. Zimmel은 문화는 현실의 사회적 환경변화에 대응(對應)하기 보다는 도리어 유리(遊離)되는 경향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 시대의 불안이 사회문화에 깃들어 있는 까닭이며 <문화의 비극>이라 하였다.

 

어우러져 구성되는 풍물놀이를 보면 정말 끈끈한 민족의 향연을 실감한다. 전혀 배타적이지 않으며 포용(包容)하고, 낙천적이면서도 방탕(放蕩)하지 않고, 무질서처럼 보여도 일정한 조화(調和)가 있다. 오랜 농경문화에서 전승되어 온 공동체 의식이 두레,품앗이와 같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집단노동의 형태로 나타난다.단순한 농경사회에서 집단으로부터의 배척(排斥)은 사형선고(死刑宣告)나 다름없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화에 따라 1970년대 초부터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사상(個人主義思想)이 팽배하였다. 특히 농촌에서 현금경제(現金經濟)의 만능(萬能)과 대가족 제도의 붕괴(崩壞)로 농촌의 노동력은 산업현장에서 재화의 가치(價値)로 평가되었고, 가치의 차별화를 강요하는 경쟁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은 능력의 평준화(平準化)로 비하(卑下)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타인과의 이질성(異質性)은 당연시 되어 인성(人性)은 점점 이기적 성향으로 변모하였다. 전통적인 생활양식(生活樣式)의 굴레를 버리고 매력적인 도시생활(都市生活)의 꿈을 향한 충동적 이농(離農)은 계속되었다.

 

사회적 현상도 변화하여 함께 어울려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인적자원(人的資源)과 시공적 조건(時空的 條件)이 쉽지 않았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인하여 집단적인 농경사회에 근간을 둔 풍물놀이는 그 본래의 모습을 도시문화에 슬기롭게 접목(接木)하지 못하였다. 새로 유입된 도시민은 잘 짜여진 행동양식에 따라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기계인간(walking machine)으로서 마음의 정화(Catharsis)나 정서적 안정(Relaxation)을 이룰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기계적 놀이(전자음악 전자오락)에 밀려 풍물놀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결과 1978년 사물놀이라는 형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비교적 그 구성이 풍물놀이보다 간결하고 시공적 조건이 경제적이며 무대놀이화 하는데 적합한 것이었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현실적 변화에 사회문화가 변화하며 순응하는 시기가 아주 적절한 것이었으며,다중매체(Mass Media)의 보급으로 사물놀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 그 놀이를 대중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사물놀이가 광의의 풍물놀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민속놀이가 일순간의 무의미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민중속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자생하며 적어도 함께하는 정신적 공동체의식을 근간(根幹)으로 변화하는 사회문화와 유리(遊離)되지 않는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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